본문 바로가기

글거리

좋은 렌즈를 산다.



내가 맨 처음으로 DSLR을 써본게 2009년이다. 7년이나 됐다. 햇수로는 8년이네...

번들렌즈만 가지고 열심히 Davis를 돌아다니며 찍었었다.

렌즈를 바꾸면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렌즈를 너무너무너무 사고싶었었다.

그 당시 미국에 있다보니 과외도 할 수 없었고 용돈에만 의존하던 생활이었기 때문에

10만원짜리 저렴한 쩜팔렌즈 하나도 사질 못했다.

(카메라도 정말 겨우겨우 모아서 샀다.. 게다가 리퍼비시로..)


그러다 돌아와서 과외도 하게되고 하다보니 어느정도 수입이 생겼고 렌즈를 차근차근 모아서 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정조리개 표준 줌 렌즈를 샀었는데 정품/내수 잘 몰라서 손해도 좀 봤었고

수많은 리뷰를 보면서 내가 살 수 있는 범주 내의 렌즈들을 사기 시작했다.

맨 처음 15만원을 주고 샀던 렌즈를 10만원, 20만원 더 모으고 쓰던건 중고로 팔아 다른 렌즈를 샀고


적은 금액으로 살 수 있는 렌즈들은 어지간하면 다 써보았었다.

쩜팔 하나 사겠다고 1시간 반을 가서 6만원 주고 사기도 하고

쓰던 렌즈 팔겠다고 또 몇시간을 가서 팔고 오곤 했다.


내 모든 렌즈들은 캐논의 기본 번들렌즈, 저렴한 렌즈, 서드파티 등으로

최대 30만원 중반대에서만 구매 가능한 것들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다 보니 모으고 모으던 렌즈들이 꽤 되었었다.

그러다 한번은 미국에서 자이스 렌즈 12mm 32mm 렌즈 세트를 굉장히 저렴하게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중에 모아둔 돈 + 가지고 있던 렌즈를 정리해서 우여곡절 끝에 구하게 되었다.



보통 좋은 렌즈라고 하면 화질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맨 처음 Touit을 쓰면서 확 느낀 부분 중 하나이다. LCD창이나 컴퓨터에서 열었을때의 선명함은 확실히 기존에 저렴한 렌즈와는 달랐다.

최대개방 값에서 컨트라스트가 또렷해 뭔가 사진의 인상이 강해졌다.

초광각 렌즈의 왜곡도 매우 적고 화질도 뛰어나서 좀 많이 놀랐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싼 렌즈가 뭐 별거 있겠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비싼 렌즈는 그 값어치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한동안 그렇게 사진을 찍어왔고 학생 신분을 벗어나 일정 이상의 수입이 생겼다.

중고 50~60만원대의 렌즈를 구매도 하고 사용도 해보았는데

확실히 좋은 렌즈는 뭔가 다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매우 확고해졌다.




그리고 D750을 들이고 난 이후 고급 렌즈군을 좀 대거로 입양 했는데

35N, 58N, 85N으로, 니콘 최상위 렌즈군이다.

신품 가격이 거의 200에 근접하는 렌즈들로,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가격이다.



10만원대의 렌즈부터 200까지 정말 다양한 렌즈들을 사용해 봤는데

이제와서 조금 느끼는 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저렴한 렌즈(대충 30만원 이하)의 화질은 부족하지 않다.

 - 말 그대로 부족하지 않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여행, 접사, 인물 등 어느 하나에서 그렇게 부족한 면을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화질과 함께 조금만 조리개를 조이면 고급 렌즈와는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느껴진다. 화각만 충분히 갖춰진다면 사진생활에서 딱히 문제는 없다.



2. 비싼 렌즈는 대부분 배경 처리가 좋다.

 - 그 전에 사용한 렌즈들은 뭔가 아웃포커싱으로 뿌옇게 배경이 날아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자이스 Touit을 사용할 때 다르다는걸 많이 느꼈다. 배경을 처리하는 방식, 보케를 보면 기존 사용하던 렌즈들과는 사뭇 다르다. Planar구조를 가진 렌즈가 왜 인물 사진에 좋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지 몰랐는데 이건 정말 참신했다. 정말 맑은 컨트라스트를 보여주며 배경은 흐드러지는 듯한 보케로 뒤덮이는 그 느낌이 다르다. 꽃 사진, 일상 스냅 사진들에서 달라지는 배경의 모습으로 인해 피사체가 더 부각되거나 돋보이게 만들 수 있었고 색감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참 배경에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3. 대부분의 비싼 렌즈는 화질이 뛰어나다.

 - 그렇다. 화질이 나쁠 수가 없다. 만약 가격이 높은데 화질이 떨어진다면 누가 구매하겠는가? 시그마 35mm f1.4 렌즈와 같은 서드파티 최상위 렌즈들의 화질은 정말 정점을 찍는다. 캐논, 니콘, 후지, 소니의 고급 렌즈들은 대부분 화질은 기본으로 가져간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또렷하게 볼 수 있고, 보정할 때 좀더 수월한 느낌은 확실히 있다. 비싼건 비싼만큼 화질은 보장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4. 모든 비싼 렌즈가 화질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 화질과는 별개로 회화력에 있어서 화질이 떨어져야만 나타나는 특성들이 있다. 적지 않은 수차는 렌즈의 화질을 떨어뜨리지만 특유의 느낌을 가져다 준다. 캐논에 50mm f1.2나 니콘의 58mm f1.4 렌즈는 그런 컨셉을 가진 렌즈이다. 최대개방 값에서 찍으면 진짜 소프트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이게 일정 거리에서, 혹은 특정 배경이나 빛에서 피사체를 찍었을 때 나타나는 입체감, 배경 처리가 정말 매력적이다. 라이카 50mm f1.4 Summilux 렌즈도 있는데 이게 올드렌즈라 화질이 대단한 편은 아니지만 이걸로 찍었을 때 나타나는 묘사력은 정말 대단하다. 왜 다른 렌즈들은 같은 화각인데도 이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저렴하니까. 수많은 광학적 특징들을 다 검토해서 특유의 느낌을 설계하려면 비용이 더욱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회화력이 좋은 렌즈들은 가격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5. 비싼 렌즈는 필요한가?

 - 구입에 부담이 없으면 뭐 말리지 않겠다. 근데 부담되는데 구매하는건 추천하질 못하겠다. 사실 위에 적당히 적어내린 특징들은 내가 오랫동안 저렴한 렌즈들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명확한 비교 대상이 있었기에 그런 것들을 느낀 것이지 내가 처음부터 비싼 렌즈를 구매했다 하면 과연 똑같은 느낌이었을까? 맨 처음 새 렌즈를 장착하고 촬영할때 '우와!' 하는건 조금 저렴한 렌즈라도 있기 마련이다. 난 분명 그때에도 새 렌즈, 뭔가 기존과 다르다는걸 느꼈었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었다. 근데 만약 내가 비싼 렌즈부터 시작했다면 지금껏 느껴왔던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그 미묘한 차이들을 알아채고 배경에 신경을 쓴다던가 렌즈 특성을 확인하고 촬영한다던가 그런건 없었지 않나 싶다.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사진을 좋아할지 모른다. 나처럼 수년간 계속 사진을 찍어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행가기 전 뽐뿌를 열심히 받고 구매한 후 집에 돌아와서 어느 구석 한켠에 넣어두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고급 렌즈군을 처음부터 사용하는건 솔직히 리스크가 크지 않나 싶다. 저렴한 렌즈군으로도 충분히 아웃포커싱, 일정수준 이상의 화질 등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사용해 보면서 배워나가는 것이 고급 렌즈들의 가치를 확실히 이해하는데 좋지 않나 싶다.  



'글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준화각. 35mm와 50mm  (5) 2017.02.13
내가 줌렌즈를 고르는 기준이다.  (0) 2016.10.26
단렌즈를 고집한다.  (9) 2016.09.13
행사사진 함부로 부탁하지 말자.  (2) 2014.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