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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거리

단렌즈를 고집한다.
















  며칠 전 사진 찍고 나서 사람들과 술을 먹을 즈음 누가 내게 '렌즈를 왜 그렇게 많이 사냐고' 물었다. 줌렌즈 하나면 화각은 충분하지 않냐고 생각한다는데 그냥 뭐 나는 줌렌즈를 안 쓰니 다양한 화각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했다.

줌렌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다양한 화각을 한 렌즈에 사용하는 것이다. 렌즈를 따로 잔뜩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교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렌즈도 무겁고 내부 구성이 복잡하다. 일반적인 줌렌즈는 고정조리개 2.8 혹은 4.0인데 2.8은 좀더 무겁고 크며 4.0은 어느 정도 괜찮은 편이다. 
어쨌든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1.줌렌즈는 편의성 빼고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 렌즈 하나로 주구장창 다양한 화각을 찍을 수 있으니 좋다. 근데 그것 뿐이다. 나도 여행 갈 때에는 편하니까 줌렌즈 하나만 갖고 가지고 간다. 지난 휴가때 후지 X-T1에 18-55만 가지고 가서 사진 아주 잘 찍고 왔다.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손떨림 방지도 있으니 야간에 부족한 조리개 값을 메꿀 수 있고 어느 정도 아웃포커싱도 무난하게 해낸다.
무난하지만 특출나지 않고 재미 없다. 

2.심도
- 카메라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는게 이놈의 심도인데, 어떤 사람들은 심도에 미쳐서 밝은 렌즈만 사는걸 보고 뭐라 하는 경우가 있다. 무조건 배경 날려서 이쁘게 보이게만 찍는다고 여기는데 이건 큰 착각이다. 심도는 2차원 평면인 사진에 3차원 공간감을 주는 가장 큰 요소이다. 줌렌즈도 FF에서 꽤나 괜찮은 심도를 보이지만 단렌즈의 심도는 줌렌즈와는 다르다. 이걸 느끼고 말고의 문제인데 느끼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단순히 배경을 날리는게 아니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은 또렷하게, 그리고 지우고자 하는 부분을 지우는데 심도는 굉장히 유용하다.

3. 표현
- 나는 인물 사진을 찍거나 어떤 피사체를 찍을 때 항상 배경을 본다. 클로즈업 된 사진이 아닌 어느 일정 크기의 공간에서는 배경 또한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렌즈는 이런 배경 표현에 훨씬 유용하다. 특히 단렌즈가 주는 배경 처리, 빛망울, 밝은 조리개로 인한 심한 수차들은 내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조리개 값의 정의는 “초점거리/조리개 구경” 인데 말 그대로 조리개 구경의 크기이다. 따라서 발생되는 착란원의 크기, 모양, 특성들이 렌즈마다 제각각이다. 단렌즈는 이런 부분들에 있어 밝은 조리개 값으로 인해 렌즈 특성이 다양하다. 결론적으로 줌렌즈는 아무리 해봐야 단렌즈 만큼의 특이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4. 화질
- 작년 즈음부터 렌즈의 화질은 신경 안쓴다. 선예도건 뭐건 그런건 내 알 바 아니다. 뭐 그래도 대충 따지자면, 단렌즈는 대체로 줌렌즈에 비해 선예도가 뛰어나다. 물론 최대 개방 값에서는 당연히 모든 단렌즈 화질은 그렇게 좋지 않다. 물론 최신 렌즈들은 최대개방에서도 굉장한 화질을 보여준다. 시그마 35mm 50mm 라인은 정말 대단할 정도이다. 거기에 줌렌즈 2.8과 단렌즈 2.8을 비교하면 이건 뭐… 압도적으로 단렌즈가 우세하다. 난 화질의 스펙트럼, 그리고 그 효용성 때문에 단렌즈를 사용한다.

5. 구도
- 35mm 사용하면 내가 좀더 배경에 신경 쓰고 구도를 잡고 50mm, 85mm는 인물에 좀더 신경을 쓰겠지. 근데 솔직히 구도에 정석이 있나? 삼분할법 같은것만 적당히 잘 쓰고 수평만 잘 맞춰도 구도는 어느정도 잡힌다. 단렌즈는 단일 화각에서의 다양한 구도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에 난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피사체가 작거나 배경이 좁다 느껴져서 줌을 확 땡기는건 애초에 구도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찍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물론 줌을 당겨놓고 다시 구도를 찾으면 되겠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냥 바로 누르는 편이다. 구도는 피사체와 배경을 적당히 구성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줌렌즈는 이런걸 솔직히 망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6. 그래서 뭐냐면
- 내가 가진 줌렌즈는 여행용으로 사용하는 후지 18-55, 50-230 그리고 얼마 전에 들인 니콘 80-200이 있다. 후지 18-55나 50-230은 굉장히 가벼운 렌즈이며 화질도 무난하다. 망원계열을 잘 사용하지 않는게내 특징이긴 한데 확실히 망원에서는 줌렌즈가 좀 편하다고 느끼긴 한다. 망원 단렌즈는 보통 105mm 135mm 200mm 인데 솔직히 너무 크고 무거운데다가 가격이 만만치가 않으니까. 최근 180mm 단렌즈를 정리하고 80-200mm를 들였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물론 단렌즈만의 표현력은 줌렌즈에서 보기 좀 힘들긴 해도 말이다. 고정 2.8 망원 줌렌즈는 무겁고 어차피 내가 자주 사용하는 화각이 아니니 가끔씩만 들고 다니게 된다. 
  가끔씩은 줌렌즈가 있음 좋겠다 생각할 때도 있다. 정신없이 스튜디오에서 샷을 날려야 할 때, 한 자리에서 다양한 화각으로 몇개의 구도를 잡으면서 찍을때 등등이 있다. 특히 f4정도로 조이고 조명만 변경해서 찍을 때에는 단렌즈보다 줌렌즈가 많이 편하고 딱히 화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쇼핑몰 착샷이나 빠르게 여러 샷들을 찍어야 할 때는 줌렌즈가 편하긴 참 편하다. 
  그래도 주로 단렌즈를 사용한다. 렌즈 교체하기 번거롭고, 주렁주렁 몇 개씩 가지고 다녀야하고, 화각의 자유도가 부족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렌즈가 주는 특유한 느낌과 회화성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줌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잘 사용하는 35~85mm대는 더더욱 단렌즈를 활용한다. 야외에서 인물 사진을 찍거나 야간 촬영에 단렌즈의 조리개값은 ISO를 한 두 스탑 낮출 수 있도록 해주는데다가 손떨림 방지는 촬영자의 손떨림을 방지하는 것이지 피사체의 움직임으로 인한 블러는 막을 수 없다.
  일상, 스냅을 주로 찍는 내게는 가볍고 작은 단렌즈 하나로 하루를 다니더라도 풍경이면 풍경, 인물이면 인물 등 못담을 것들이 없다. 내가 굳이 줌렌즈를 고집하지않고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단렌즈가 가지는 특성이 너무 매력적이며 이는 편의성을 다 포기하더라도 충분히 얻을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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