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

인물 사진에 관하여 (20180624)




사진 모임을 해오면서 느낀 것 중 한가지는 인물사진=분위기 좋은, 여자, 예쁘게로 거의 통일된게 아닌가 싶다. 예쁜 여성을 예쁜 곳에서 예쁘게 찍는 것은 분명 매우 매력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진인 것은 맞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분명 아니다. 나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다.


 근데 나에겐 이런 사진이 질린다. 순간적으로 그 사진을 보았을 때 그게 정말 아름답고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사진일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는지,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예쁜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 사진을 내가 찍었다’, ‘누군가 찍어서 보여주었다’, ‘내가 그 사진을 보는 단 10~20초 정도만 잠시나마 솟아오르는 엔돌핀에 행복하다느낌이 너무 강하다. 뭐 결론적으로 말해서 남는게 없다는 기분이다.


 물론 찍힌 사람이 스스로가 만족하고 내가 가지고 싶은 나의 한 모습을 담아 두는 것의 의미는 매우 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찍는 입장에서 남는 건 무엇일까? 상대방에게 좋은 사진을 남겨줬다는 것 이외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 의도한 것을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어떻게 남겨 줄 것인지 한번쯤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인물 사진임에도 인물사진의 주제를 인물로만 가져가고 싶지 않다. 인물이 주제가 될 경우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이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만 남겨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쁜 카페, 예쁜 스튜디오, , 덩굴, 벽돌 등 수 많은 소재들은 단지 인물을 돋보이게만 하는 수단에 그칠 뿐이다. 인물과 함께 주어지는 주변 환경, 내가 상상하던 수많은 색상과 소재들이 같이 얽히고 연결되어 하나의 인물사진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기 때문이다. 인물이 주요 피사체가 되겠지만, 주변 환경도 그에 걸맞는 의미를 가진 채로 남겨두고 싶다.


 어떤 미술 작품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순수한 그 모습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추상화의 경우 더더욱 그런 경향이 많다. 하나의 선을 그어도, 물감을 흩뿌린다 하더라도 모든 물감 방울방울이 내가 원하는 의도대로 움직이게 할 수 없으며, 만일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추상화를 그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난 무작위적으로 행동하겠다고 하는 작가의 행동은 분명 의도에서 태어난다고 본다. 단 하나의 선이 내가 조종하고, 조절하지 않은 선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그렇게 그리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하나의 추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작가의 의도를 추론하고 공감해야만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대충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물감들이 아닌, 작가가 그린 그림이 되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우겨 넣고 준비하고 의미를 두고 싶다. 예쁜 장소, 멋진 출사지에 가서 수백, 수천장씩 찍어내는 사진이 아니라 작은 스튜디오, , 어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공간을 활용하더라도 하나하나가 내가 의도를 가지고 넣어줄 수 있는 소재들로 구성하고 사진이 의미를 가지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킬을 잊어야 하고, 장비를 잊어야 하고 오로지 의미만을 머리 속에 염두해 둔 채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